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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무지를 통해 살펴본 T.S.엘리어트의 언어실험과 그 의의
현대시의 가장 두드러진 특성은 언어 사용의 측면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기존에 존재했던 언어의 의미 전달능력에 대한 믿음이 19세기 중만 무렵부터 붕괴되면서, 의미를 전달하는 언어(logopoeia)보다는 이미지를 전달하는 언어(phanopoeia)와 시어가 갖는 리듬 등의 음악성을 강조한 언어(melopoeia)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다. 그 대표적 운동으로 상징주의와 이미지즘을 들 수 있을 것이며 영미계의 대표시인으로서 에즈라 파운드(Ezra Pound)와 엘리어트(T.S. Eliot)를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의미언어를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란, 언어는 곧 절대적 의미전달자라는 전통적 확신의 파기에서 초래된 것이다. 이는 철학, 역사학, 과학, 심리학 등의 영역에서 이루어진 새로운 발견으로써 인간에 대한 관점 자체를 전환시컸던 19세기 말엽의 역사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엘리어트는 전적으로 의미언어를 배제하기보다는, 언어의 음악성과 이마지를 강조하면서도 신화나 전설, 기존 작품에 대한 암시적 언급 등을 통해, 이성중심의 역사가 배척함으로써 소외시킨 언어의 영역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그러므로 그에게서는 음악성이나 이미지란 것도 그것이 주제를 보다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한에서 유의미한 것이었고, 형이상학파 시인들에 관한 글에서 사상을 장미 향기처럼 전달하는 것이 진정한 시인이라 했듯, 그는 자신이 전달하고자 한 의미를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하려고 했던 시인이다. 엘리어트가 이러한 의도를 가지고 초기시에서 주로 사용한 언어는 전통적인 묘사적 언어(descriptive language)보다는 『황무지』(The Waste Land, 1922)에서 보이듯 이미지와 상징, 음악성 등을 강조한 불러일으키는 언어(evocative 〔suggestive〕 language)"이다
죽음으로의 카운트다운: Sylvia Plath의 시를 읽는 한 방법
고백시인들은 자신의 삶을 시대의 메토니미〔환유〕로 원용하는 까닭에 이성시학에서 상징을 가져오기보다는 개인적 경험의 편린에서 상징을 취하여 이에 사회적 의미를 부여한다. 엘리어트와 같은 모더니스트의 상징이 신화와 같은 집단무의식에 기반한 것이어서 어느 정도 이해하기 쉽다면, 고백시인의 상징은 시인의 삶을 알지 못하고는 시의 문맥이 통하지 않아서 해독이 어려울 때가 많다. 그리고 더러는 전기적 사실들을 숙지하였다고 해도 작가가 하나하나 설명하지 않는 한 그 의미가 애매한 채로 남아 있는 경우도 있다. 실비아 플래스에게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어서 그녀의 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녀의 삶과 시대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고백시를 포함한 1950년대 이후의 시를 이해하려면 우선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고려해야 한다. 고백시인들은 한결같이 그들이 처한 사회의 상황에 대한 어떤 반응의 일환으로서 시나 소설을 썼으며 그것은 시대에 대한 회의나, 그러한 시대상황을 초래한 이성중심의 문학전통이나 가부장제 등 사회전반의 이성문화에 대한 비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시기의─그리고 현재에 이르는─대표적인 문학적 방식은 그 이전의 이성시학에 대한 패로디라고 말할 수 있다. 그 한 예로 로버트 로월(Robert Lowell)의 시는 주로 후기로 갈수록 엘리어트(T.S. Eliot)가 이룬 문학전통을 패로디하는 동시에, 엘리어트의 현대작가정신(Modern spirit)은 사상한 채 문학적 기교만을 일삼는 이류모방 작가들에 대한 패로디였다. 그리고 이 글에서 다룰 실비아 플래스의 시 역시 이성중심의 문화와 가부장제 사회의 모든 억압적 기제에 대한 반발이요, 시적 패로디이다. 그러나 기법면에서 플래스는 다른 고백시인들과는 달리 신화적 방식과 전통적 상징주의─물론 궁극적으로는 그 신화적 의미를 뒤틀어놓고 상정의 의미를 변화시킴으로써 전통적 의미에서 이탈하기는 하지만─및 이미지즘을 자주 원용함으로써 모더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비교적 상징과 이미지가 덜 개인적이라는 점에서 플래스의 시는 이러한 모더니스트적 방식을 별로 사용하지 않는 다른 고백시보다 이해하기가 좀더 수월하다는 잇점이 있다. 또한 시의 형식면에서 로월이 형식의 개혁을 통해 작가가 처한 상황의 딜렘마를 해결하려 하였다면 플래스는 19행 2운체시(villanelle), 3운구의 터자 리마(terza rima) 등을 주로 사용함으로써 모더니스트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플래스는 가부장제를 비롯한 이성전통이 인간의 정체성을 말살시키는 시대를 살아왔다는 인식에 있어서 로월을 비롯한 당대의 고백시인들과 감수성의 딜렘마를 공유하면서도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 점에서 포스트모던 작가이면서 모더니스트의 면모를 지닌다
